시간을 아껴보고자 만든 도구들
작은 시간이라도 아껴보자
개발자로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기분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앱을 만들고, 멘토링을 하고, 콘텐츠를 쓰고, 아이를 보고, 잠도 자야 합니다. 이 모든 걸 하루 안에 욱여넣으려면 어디선가 시간을 짜내야 합니다. 게임도 줄여보고, 쓸데없는 쇼츠를 보는 시간도 덜어내보았지만 역부족 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흘려보내는 작은 시간을 모아주는 도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개발을 할 때 단축키를 쓰던 습관이 생각나서 작은 시간들을 모아서 크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세 개를 소개합니다.
클립 키보드 — 구석에 넣어놓은 것을 다시 찾지 않게
iOS앱에 메모장, 메신저 중에 나와의 대화에는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메모에서 부모님 집 주소를 복사하고, 스카이 패스 번호를 복사하고, 더 스크롤 해서 내가 만든 앱 링크도 복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작성하던 메시지로 돌아가서 붙여넣습니다. 빠르면 5초 오래걸리면 수십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다시 찾으러 가는 시간”이 단순히 5초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이런 연구가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UC Irvine)의 글로리아 마크(Gloria Mark) 교수는 사무실 노동자들의 작업 패턴을 추적한 연구로 유명한데, 한 번 흐름이 끊긴 작업으로 다시 돌아와 집중을 회복하기까지 평균 약 23분이 걸린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23분이라는 숫자에는 여러 해석과 비판이 따라붙기는 하지만, 짧은 작업 전환 한 번이 표면에 보이는 시간보다 훨씬 큰 인지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은 이후의 후속 연구들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빨라도 5초짜리 복사·붙여넣기 동선이 사실은 5초가 아닌 이유입니다.
클립 키보드는 이 문제를 키보드 레벨에서 해결합니다. 어떤 앱에서 글을 쓰든, 키보드를 클립 키보드로 바꾸기만 하면 최근에 복사한 내용들이 줄지어 보입니다. 탭 한 번이면 붙여넣기 끝. 이전에 복사한 코드 스니펫, 자주 쓰는 주소, 어제 받은 인증번호까지 — 다시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는 개발하다 지금 스프린트의 앱 버전과 스펙을 여기저기 옮기는 게 귀찮아서 만들었는데, 막상 만들어 놓으니 일상에서 더 많이 씁니다. 메신저에서, 메모에서, 폼 입력 칸에서. 한 번 익숙해지면 다른 키보드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골드위크 — 쉴 시간을 미리 설계하기
연차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캘린더를 미리 들여다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휴식이 필요 할 것 같은 주간 그리고 마침 그 주에 있는 공휴일이 화요일에 떨어지면 월요일 하루만 붙여 4일을 쉴 수 있습니다. 목요일이면 금요일을 붙여서요. 그런데 이건 사실 미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생각하지 못 했던 것이지요.
쉬는 게 시간을 아끼는 거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개발자에게 번아웃은 곧 몇 주, 몇 달의 손실입니다. 이 직관은 회복 연구(recovery research) 분야에서 꽤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독일 콘스탄츠 대학의 사빈 조넨탁(Sabine Sonnentag) 교수가 오랜 기간 다듬어온 “심리적 분리(psychological detachment)” 개념이 대표적인데, 일에서 정신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사람일수록 번아웃 지수가 낮고, 다음 날의 업무 성과와 안녕감이 더 높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보고됩니다. 또한 드 블룸(de Bloom) 등의 휴가 연구들은, 휴가의 회복 효과가 기대보다 빠르게 사라진다는 점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한 번에 길게 쉬는 것보다 짧은 휴식을 자주 분산해 두는 편이 누적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어서 보면, 한 해에 쉴 시간을 미리 설계하는 일은 단순한 여행 계획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관리 기술입니다. 골드위크는 한 해의 공휴일을 한눈에 펼쳐 보여주고, 어디에 연차를 끼우면 가장 길게 쉴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올해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어떻게 붙지?” 같은 질문에 1초 안에 답을 줍니다. 짧은 휴식들을 한 해에 고르게 흩뿌려두는 데에도 쓸 수 있습니다.
미리 설계된 휴식은 사후의 회복보다 훨씬 쌉니다. 골드위크는 그런 예방의 도구입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잠깐 들여다보면, 그해의 숨 쉴 구멍이 어디인지 미리 보입니다.
두번알림 — 발표와 멘토링의 시간을 잡아주는
발표를 해본 사람은 압니다. 30분짜리 발표를 시작하면, 어느 순간 몰입에 빠져 시계를 못 봅니다. 정신 차려보면 이미 5분이 초과돼 있습니다. 멘토링도 마찬가지입니다. 1시간으로 잡힌 세션이 1시간 30분이 되고, 다음 일정이 밀립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잘 알려진 심리학적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하나는 영국 역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Cyril Northcote Parkinson)이 1955년에 제시한 파킨슨의 법칙입니다. “일은 그 일에 주어진 시간을 가득 채우도록 늘어난다”는 관찰인데, 이후 여러 시간 관리 및 마감 효과 연구들은 이 직관이 사람들이 마감일을 신호 삼아 작업의 폭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한다는 일반적인 패턴과 잘 맞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30분 발표가 35분이 되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명확한 멈춤 신호가 없을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다른 하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정리한 몰입(flow) 상태에서의 시간 왜곡입니다. 발표나 강의처럼 인지 자원을 한 곳에 집중해야 하는 활동에서는 시간 감각이 압축되어, 실제로 흐른 시간보다 훨씬 짧게 느껴집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신호입니다.
타이머는 한 번 울리고 끝납니다. 그래서 만든 게 두번알림입니다. 끝나기 얼마 전에 한 번, 끝나는 시각에 한 번 — 이렇게 두 번 알림이 옵니다. 첫 알림은 마무리를 시작할 시간을 주고, 두 번째 알림은 진짜 끝낼 시간을 알려줍니다. 한 번의 알림은 “끝났다”만 알려주지만, 두 번의 알림은 “착륙 준비”와 “착륙”을 따로 알려주는 셈입니다.
발표에서는 마지막 슬라이드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됐고, 멘토링에서는 다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작은 도구지만, 이 두 번의 진동 덕에 제 하루가 덜 무너집니다.
도구는 결국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
이 세 도구의 공통점을 찾자면, 전부 “제가 매일 잃어버리는 작은 시간”을 향해 있다는 것입니다. 복사·붙여넣기 5초, 캘린더를 뒤지는 10분, 일정을 넘겨버리는 30분. 하나씩 보면 사소하지만, 매일 쌓이면 1년 안에 책 한 권을 더 쓸 수 있고, 아이와 더 놀아줄 수 있고, 잠을 더 잘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도구가 향하는 문제가 결국 학계가 오랫동안 들여다본 주제와 겹친다는 사실입니다. 작업 전환의 비용, 회복의 분산, 시간 신호의 부재. 1인 개발자가 자신의 하루를 살리기 위해 만드는 작은 앱들은, 다르게 말하면 인지과학과 조직심리학의 발견들을 자기 손바닥 안의 도구로 옮겨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건 결국 시간을 다루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아껴주는 게 좋은 비즈니스이고, 제 시간을 아껴주는 게 좋은 일상입니다. 저는 이 둘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이전부터 하지 못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작업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생성의 속도를 높여준 지금이 시작하기에 적기였습니다.
저는 매일 1분을 아쉬워하고 있고 아마도, 같은 문제로 1분을 아쉬워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제 시간을 위해 만들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내놓는 일을 계속할 것 입니다.


